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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건이 정기군 5천명으로 팔공산 아래서 후백제왕 견훤을 맞아 동수대전을 벌였으나 전세가 불리했다.
장사 김락과 신숭겸이 죽고 모든 군사들이 패배함으로 왕건은 난을 피하여 지금의 동내동까지 이르니 적군의 추격이 없었다. 한줌의 땀을 식히고 숨을 돌리게 되어 이곳을 안심이라고 불렀다.
옛날은 안심이라면 으례히 현재의 동내동을 지칭함이다. 조선시대 이곳에 경상도 하양현 안심소를 두어 행정의 일부를 관장케 하였다.
조선시대 숙종이 민정을 살피러 전국을 돌던중 이 고장에 이르니 반달이 서산에 기우는 야밤이었다. 한 집에 들러 하룻밤 지내기를 청하니 집주인이 아주 친절했다. 허기를 채우고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이 동리의 이름을 물으니 동리에 이름이 없다 하였다.
숙종이 은근히 묻기를 "이 나라 임금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없어 아직 동리에 이름이 없고, 사리 사욕을 위한 부정부패로 관리들의 마음이 차 있으니 도대체 이런 임금을 어찌 하겠는가? 새 임금이 나와야 되지 않겠냐"고 하였다. 주인이 대뜸 뺨을 치며 하늘엔 해, 나라엔 임금님인데 함부로 나랏님을 욕하는 놈이라고 하며 당장 나가라 하였다. 윗방에 있던 그의 아내가 달려와 남편 못지 않게 달려들어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다시피 하였다. 숙종이 백배사죄하며 용서를 구하니 다시는 그런 언행을 못하도록 충고하였다.
이튿날 숙종이 그 집을 떠나면서 경성에 올 일이 있거든 경성에서 제일 큰 집을 찾아 이서방을 찾으라 하며 꼭 한번 들르라 하였다. 이듬해 그 집주인이 경성에 들러 경상 도 촌사람이 경성 이서방을 찾아 왔다며 제일 큰 집은 이 집이 틀림없으니 들어가겠다고 소리를 침으로 숙종이 불러들여 그때의 심정을 얘기한 후 소원을 물었다. 그는 아직 자신의 동리가 이름도 없는 무명촌이니 동리 명칭을 하나 지어주기를 청했다.
숙종이 말하기를 내가 민정을 살필 때 그 동리에 다다르니 하늘에 반달이 떠 있었다. 그러니 그 때를 생각하여 '半夜月' 이라 함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지금 쌍용양회 공장이 들어선 곳이 숙종이 바위에 잠시 앉았던 자리였으나 세월이 흘러 자취를 찾을 수 없다. 반야월이란 용계, 신기, 서호, 동호를 통틀어 부르기도 한다.
해방후 행정 구역 정리시 반야월을 포함 숙천동까지를 경북 경산시 안심면이라 칭하였다. 그 후 다시 1982년 7월 1일자로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경북 경산군 안심읍이 대구직할시에 편입,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청에서 동구 서호동에 안심 출장소를 두어서 행정상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이 지역을 안심 또는 반야월이라 부른다.